- 해뜨는 집을 다녀간 느낌입니다.

서울에 잘 도착했습니다.
이근홍   2003-02-24 1441
서울에 잘 도착했습니다.
24시간 동안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봄비에 젖은 제주를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를 떠나기 전에 먹은 짙은 녹색의 전복죽, 그 고소하고 정성담긴 음식 이 아직도 포만감을 느끼게 합니다. 올 봄을 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먼 제주를 번개처럼 다녀온 뒤 일요일 오후를 느긋하게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여유. 번개 여행이라고나 할까요. 비행기 시간에
쫓겨 오조리 마을회관 옆의 삼촌 집을 찾지 못하고 급히 온것이 내내 아쉽습니다. 10년 전에는 마당에 게들이 기어다니더니, 시멘트로 마당을 씌워놓은 집들이 대부분이며, 양옥으로 개축한 집들이 많아서 더욱 찾기 힘들었나 봅니다.
아이들더러 더 있다가면 좋을텐데, 공부 잘 하라고 당부하시던 오조리 할망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올해에는 공부를 더욱 잘 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삼촌께 용돈까지 받아왔으니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여행이었겠지요, 남들은 결혼할 때나 자보는 멋진 방에서 한 밤중에 끓여 먹은 라면 맛도 잊지 못할 테구요.
다음에 오면, 오조리집을 꼭 찾아 들려볼 것이며, 우도에도 건너가 보렵니다.
창 밖으로 보이던 야자나무가 파타야 해변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지요. 그러나 바다로 눈을 돌려 식산봉 아래 검은 밭과 검은 바위를 보는 순간 오조리 삼촌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평생을 엎드려 캐던 조개밭이 체험학습장이 되더라도 검은 땅을 일구고, 캐던 제주 할망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남정네들은 일출봉처럼 거센 바람을 맞으며 버티고 견디다 쓰러지기도 하였지만,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자신을 비추며 살아가는 오조리의 뜻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이번 여행은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광이라는 명목아래 숨죽이던 제주의 소리를 더욱 가까이 들을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추사 적거지에서 나와 무릉으로 향하던 해변가에서 들리던 절해고도의 유배지임을 느끼게 하는 한없는 바람소리, 파도소리였습니다. 완당이 강씨 집에 곁방을 들인 별채의 작은 방에서 그렸을 세한도의 기상은 그 바람소리가 깃들여진 듯합니다.
바람이 심해 몹쓸땅이었던 모슬포항을 지나, 송악산을 찾는 과정에서 백조일손 학살처를 발견하였습니다. 일제가 오끼나와와 더불어태평양전쟁의 거점으로 삼았던 제주의 최남단 기지 모슬포에 일제가 파놓은 참호와 탄약고가 해방 뒤에는 다른 명목으로 사용되었지요. 백 하르방의 한자손인 백조일손 학살처는 지금도 푹 파여 있어서 그때의 처참함을 느끼게 합니다. 허욱 대위가 지휘한 학살에는 지역유지와 무고자들도 무력하게 당하였다지요.
2월 18일에 있었던 대구 중앙역 화재참사도 선량한 시민들은 무력하기만하여, 또다른 백조일손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현대 한국인의 죽음은, 50년전 처럼 이념 때문이 아니라 무이념, 무기력에 의한 무차별 살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계리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쓰라린 옛 사람들의 한이 바람되어 불고 있었고, 송악산 기지 언덕에는 소많한 염소들이 떼지어 구름처럼 모여있었습니다.
중문단지 끝의 주상절리, 용암이 막 떨어져 육각기둥을 이루는 모습이 상상되는 시간의 끝자락에서도 파도는 기둥을 한없이 때리고 있었습니다. 참, 그런데 우리가 다니는 곳에는 입장료가 없어서 랄라라였지요. (추사적거지에서만 500원. 팜플렛 값이나 될런지...)
서귀포항 방파제에서 맞았던 동지나해인지 태평양인지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사람도 밀어내는 세기였습니다. 그 방파제가 파도와 싸우는 동안 서귀포항은 평화롭게 배가 정박하여 있고 언덕에는 먹고 구경하기 위한 집들이 불을 환히 밝히고 흥청대며 있었지요. 파도를 그렇게 막는 동안에.....먼 옛날 먼 바다에서 표류해오는 혹은 일부러 찾아오던 남양인들이 보이는 듯 하였습니다. 거칠 것 없이 태평양을 향한 서귀포항.
공리 닮은 젊은 날의 장미희와 안성기 등 친숙한 얼굴이 밤을 밝히는 남원 큰 엉 부근 영화박물관 해안가를 파도를 벗삼아 거닐다 무서워져 찾아온 해뜨는 집.
어떤 신혼부부가 닷새동안 묵다 떠난 방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던 다리를 펴고 푹 쉬었습니다. 사모님께서 정갈하게 관리하시는 흔적이 느껴지는 편안한 방. 삼층에서 마주친 사대에 걸친 가족의 따뜻한 사랑. 두 손자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오조리의 기억에 또 하나를 각인하였습니다.
세상의 92세 할머니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곧으신 고봉옥 삼촌, 해뜨는 집의 대들보이신 홍문자, 강중훈 시인님, 건강하신 아드님, 어여쁜 며느님, 만들기를 좋아하는 강민혁, 청소와 분류를 잘하는 강민재..... 행복하시고, 바람부는 날 또 봅져.
잘 도착 하셨다니 기쁘오
황은영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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